Getting PhD/3rd year

2016.04.22 :: Brownbag Seminar

청순한 펭귄알투디투 2016. 4. 23. 11:25

엊그제 brownbag에서 작년 가을학기부터 C와 같이 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깜짝 상식: Brownbag이란?


원래 brown bag은 말 그대로 갈색 봉투인데, 미국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 등을 사면 보통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준다 (그 왜 우리가 머릿속으로 파리지앵이 아침에 자전거 앞 바구니에 바게트빵을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싣고 파리를 달리는 걸 상상했을 때의 딱 그런 봉투). Brownbag 세미나는 간단한 음식을 사서 brown bag에 담아와갖고 모여앉아 각자 먹으면서 발표하는 형태의 연구 세미나.  우리 과에서는 매주 박사과정생 1--2명이 돌아가면서 자기 연구 주제를 발표한다. 내가 1년차 때에는 이걸 낮 12시에 해서 Brownbag의 정신에 부합했는데, 이번 학기엔 오후 3:30에 하는 바람에 뭘 실제로 먹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실제로 활용될 때에는 원래의 취지/어원과는 무관하게 뭘 먹든 말든 그냥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발표하는 세미나를 brownbag이라고 하는 듯. 참고로 지난 학기에 내가 가서 발표한 옆 학교도 Brownbag을 아침 10시에 한다. 


나랑 C가 하는 일은 학과의 메인 연구 주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메인이 되는 분야라고 하면 미시계량을 이용한 전력, 재래/비재래 에너지 자원 생산/시장, 광물 시장 분석등인데, 우리는 좀 노동경제학, 환경경제학 및 사회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학과에서 하는 것과 다르다는 건 뭐다? 처음 시작했을 때 나도 익숙하지 않은 주제였다. 이쪽 분야에서 자주 이용되는 용어나 개념 등이 눈에 익기까지 반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 하는 내용이 reduced-form 보다는 structural로 푸는 게 더 적절한 것이라 모델이 무지하게 복잡하다. 즉, 발표에서 이쪽에 낯선 청중들에게 설명해야 할 게 굉장히 많다. C는 발표를 40분 정도 잡고 하라고 했는데, 동시에 청중들이 이 내용들 잘 모르니까 hedonic이나 sorting 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은 설명을 해 줘야 한단다. 그 두 가지는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암튼간에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땐 정말 막막하고 관련 논문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했는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아주아주 조금씩이나마 더 이해를 해 나가다 보니 재미가 많이 붙었다. 새로운 내용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지만, C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참 많다. C는 무지하게 깐깐한데, 연구 외적인 부분에 대해는 터치를 하지 않고 연구와 관련된 분야에만 깐깐하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게 괴롭지 않다. 미팅을 하면서 내가 내 딴에는 괜찮은 아이디어랍시고 들고가는 것들을 C는 정말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과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를 따져본다. 그러다보니 나도 뭔가 큰 생각 없이 대충 이럴 것 같다 수준에서 내뱉지 않고, 더 꼼꼼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지금 선행연구를 replicate하고 있는 단계인데, 선행연구와 다른 결과를 얻고 있다. 왜그런가 생각해보니 자료의 한계로 인해 housing prices 변수를 선행연구와 다른 걸 쓰는 것 때문인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를 하면, 구체적으로 그런 변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추정치를 bias할지를 논의하고 싶어한다.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건데, 그간 내가 그런식으로 훈련을 받지 않았던 터라 처음엔 참 당황스럽고 어버버 하고 그랬다. 

동일선상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C는 내가 예전에 설명한 equilibrium model vs. econometrics 에서 전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후자인 계량에 대해서도 꽤 좋은 직관과 접근방식을 갖고 있다. 이번 논문에선 두 방법론을 다 쓰는데, 이 경험을 토대로 내 역량이 한 단계정도는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이번이 네 번째 brownbag 세미나 발표였는데, 처음엔 M이랑 한 ethanol 페이퍼였고 두번째와 세번째엔 내 qual II 페이퍼로 발표했다. 첫 발표는 M이랑 같이 했다고는 하나, 주로 내가 분석을 돌리고 M은 방향 정도만 설정해주는 것이었으며, 두번째/세번째는 그냥 내 단독저자 논문이었다. 따라서  C랑 엄청 논의하면서 준비한 이번 발표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하겠다. C는 논문 실적이 우리 과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니까 그 사람에게 1년 가까이 지도를 받으면서 준비한 논문인데다가 애초에 연구의 틀을 C가 잡아놓고 나서 내게 RA를 제안한 것이었기 때문에, 연구 세팅의 수준은 앞선 내 연구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나도 그냥 무임승차한건 아니고 그간 진짜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발표자료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이 정도면 최소한 지금까지의 발표들 중엔 제일 수준이 높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발표는 잘 끝났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모두 말했고, 우리가 막혔던 부분에 대해서 청중들로부터 좋은 조언도 많이 받았다. 발표 끝나고 다음날에 만난 애들이 어제 발표가 좋았다고 한다. 이것들.. 지금까진 안그랬잖아.. 이제 6월 학회 전까지 빡세게 해서 잘 발표하고 쭉쭉 진행해 나가면 될 것 같다. 


우리 학과에서 brownbag을 할 수 있는 건, 에너지/환경 분야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학생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교수 1인에 박사과정 학생 10명 이하의 규모였다면 이런 형태의 세미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척 적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이번에 발표한 논문을 진행하면서 다른 교수들에게도 자문을 많이 얻었었지만 우리가 하는 연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성있게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냥 그 때 그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는 교수들을 찾아갔을 뿐이지. 그런데 이번에 발표할 때에는 C외에도 교수 3인이 더 왔고, 박사과정 학생들도 15명정도 참가했다. 그러다보니 각자 자기가 익숙한 분야의 관점으로 우리 논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들을 많이 얘기해주었다. 발표 준비에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지만, 이게 시간낭비로 느껴지기 보단 여러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어 크게 괴롭진 않았다. 


이번 발표를 통해서 배운 건, reduced-form 에서의 identification 을 더 잘 해야겠다는 점이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이나 공학과는 달리 잘 통제된 실험을 통해서 데이터를 얻을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회귀분석을 돌릴 때 다들 목숨을 걸고 내생성이 없는 세팅을 만들어 변수들간의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남들은 보면 처음 보는 모델에서도 내생성이 발생할 여지를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발표 끝나고 M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논문을 많이 읽고 경험을 쌓는 수 밖에 없단다. 엄청 희망적인 조언이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보단 나으니깐. 노력하면 되는구나. 사실 이런 쪽으론 I가 내가 본 사람중 최고인데 요즘 계속 출장중이라 못 물어봤다. 다음에 찾아가서 너의 비밀 레시피를 공유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