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5 :: 운동 이야기
등산을 했다. 지금까지 4년간 등산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에서 살면서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유산소운동류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안그래도 바쁜 일상에서 굳이 등산을 위한 시간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어떻게 여기 살면서 등산을 한 번도 안할 수 있냐고 할 때에도, 어차피 내려올 거 왜 힘들게 올라가냐며 얼렁뚱땅 넘어갔었는데, 이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아내와 같이 지낼 때에는 아내가 워낙 이것 저것 하는 것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최소한 쇼핑몰이라도 가서 몇 시간씩 놀다가 왔는데,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주중이든 주말이든 집-학교만 반복하게 되었다. 딱히 아직까지 그런 일정에 큰 불만은 없는데, 이렇게 계속 지내다 보면 장기적으로 멘탈에 문제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주말엔 그래도 평소에 안 하던 것들을 해볼까 찾아보던 차에 (i) 원래 토요일 오전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이번주엔 금요일에 술을 마셔서 못 감; (ii) 지지난주 침대 커버를 갈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이젠 일상생활에 지장 없을 정도로 나았지만 그래도 무거운 무게를 들면 혹시 도질까 두려워서 일요일에도 운동 스킵. 근데 뭐라도 운동을 하긴 해야 할것 같음 이라는 조건이 맞아서 동네 뒷산에 올랐다.
미국에 살다보면 내가 굉장히 재미 없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은 미국에서 하기 어려운 것들인지라, 사람들과 비학술적인 주제로 얘기할 때 컨텐츠가 몹시 부족하다. 그럴 때 산악지형에 오랜 기간 살았으니까 등산에 대해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간 것도 있다. 취미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모습
처음 가는 거라 아무 것도 모르는 채, 하필 가장 급한 경사를 가진 등산로를 택해서 중간에 숨을 헐떡이며 한 다섯번쯤 쉬어야 했지만, 정상에서의 경치는 rewarding했다. 매주는 못하더라도 가끔씩 이렇게 올라갔다 오면 좋을 것 같다.
일반 운동화를 신고 등산을 했더니 매우 미끄러웠다. 특히 하산할 때는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음 번에 등산 갈 땐 등산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막 엄청 좋은 걸 사려고 하지만 않으면 25~40불 범위 내에서 그럭저럭 쓸만한 걸 한 켤레 구할 수 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장비병에 대해서 적어볼까 싶다.
나는 장비병이, 너무 심하지만 않다면, 그렇게 나쁜건가 싶다.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운동을 더 자주 가게 되는데, 운동이라는 게 지금까지 내가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게라도 동기부여가 된다면 좋은거 아닐까.
작년에 스콰트를 하면서 무릎 통증이 느껴져서 찾아봤더니 쿠션이 너무 좋은 신발은 스콰트에 적절하지 않다고 하더라. 아마존에서 35불짜리 아디다스 풋살화를 샀는데, 그 이후로 무릎 통증도 사라지고, 그 신발 신고 운동하는 게 너무 신나서 빼먹지 않고 운동을 가게 되었다.
운동 후에는 단백질 드링크를 먹는데, 그걸 마셔서 실제로 몸이 더 좋아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아지는 기분은 든다. 하나에 1불 꼴인데, 가끔 아침에 피곤해서 운동 가기 싫을 때에도 운동 후에 단백질 드링크 먹었을 때의 그 만족감을 생각하며 게으른 몸을 일으키기도 하니, 그 정도면 돈값은 하는 것 아닐지.
2011년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장기간 운동을 쉬었던 기간을 빼도 4년 이상은 해 왔다.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에 드디어 데드리프트 100kg을 돌파했다. 일반적인 젊은 성인 남성이 자기 몸무게의 1.5배로 데드를 치는 데 6-12개월이면 되는 것 같던데, 그런 점에서 보면 징하게도 오래 걸렸다. 30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탓인지, 아니면 학업과 병행하느라 무리하지 않고 1주일에 2번씩만 한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문가의 코치 없이 그냥 혼자서 하느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념비적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