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윕당한 김에 써보는 야구 이야기.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오늘자 승률은 0.46이 채 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야구 결과를 확인하면 50% 이상의 확률로 져 있다는 얘긴데, 어째서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하게는 왜 이따위 팀을 응원하고 있는가.
미시에서 얘기하는 합리성(rationality)은 소비자가 구매행위를 할 때, 본인이 선택 가능한 모든 대안들 중 가장 큰 효용(utility)를 주는 것을 택한는 가정이다. 이에 따라 내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승률이 절반도 되지 않는 팀이지만, 그래도 그 팀을 응원하는 게 나에게 가장 큰 효용을 가져다 준다.
"사실은 내가 합리적이지 않다" 는 가능성을 제하면, 이 것 밖에 남지 않는다.
그나마 이 팀을 응원하는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일단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살펴보자.
1. 약 46%의 확률로 이겼을 때의 만족감과 54%의 확률로 졌을 때의 빡침을 가지고 기대효용을 계산하면 그래도 양수가 나온다.
$$ E(U) = p(win) * U(win) + [1 - p(win)] * U(lose) $$
위의 식에서 \(p(win) = 0.46\)이고 \(p(lose) = 1 - p(win) = 0.53\)이다. \(U(win)\)은 이겼을 떄의 만족감이니까 양수일거고, \(U(lose)\)는 졌을때의 빡침이니까 음수일텐데, 다음과 같은 식만 만족시키면 내 기대효용, \(E(U)\)는 양수가 된다
$$ U(win) > -\dfrac{0.54}{0.46} ~U(lose) = -1.17~ U(lose) $$
즉, 이겼을 떄 기쁜 게 졌을 때 빡친 것 보다 절대값으로 1.17배 이상 더 크면, 0.46이라는 승률에도 나는 매일 평균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가설이 그럴듯 한 이유는, 팀이 이겼을 때와 졌을 떄의 내 행동 양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이긴 날은 아침을 먹으며 티비로 경기 하이라이트를 감상하여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피스에 도착하면 일단 "XXX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류의 기사를 보면서 한껏 고양감에 휩싸인다. 반면 지는 날은 경기 하이라이트 및 온갖 야구 관련 기사/글을 죄다 패스하며 최대한 야구를 내 일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위의 식에서 \( U(lose) \)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야구는 원래 감정이다.
사실 이 부분이 좀 재밌는 지점인데, 여러가지 선호와 관련된 것들 중 정치나 종교같이 야구도 이성보다는 감정의 영역인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누군가가 빨간색을 싫어한다고 해서 딱히 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진 않지만, 정치/종교/야구 이 쪽으로 오면 일단 논리가 작동하기에 앞서 마음이 먼저 어지러워진다. 도대체 왜일까?
솔직히 정치나 종교도 왜 그렇게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 둘 다 내 삶 자체를 규정하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서일 수도 있고, 워낙에 열성적 지지와 안티들이 격렬하게 싸우는 분야라서 그럴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콕 찝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야구는 더 생뚱맞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5년 전 13연패를 했을 땐 밥도 먹기 싫었던 걸까. 왜 그 팀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는 걸까.
대부분의 스포츠팀은 특정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으며, 그 팀을 응원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일체감/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하나의 설명이 될 순 있겠으나, 내가 응원하는 팀은 내가 살아본 적 없는 곳을 연고지로 삼고 있다. 야구를 한두해 못한 것도 아니고 한두해의 예외를 제하면 15년정도 꾸준히 못하고 있다.
논리적으론 설명이 안된다.
Subway에서 샌드위치 쿠폰을 보내왔다. Subway는 4-6불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아무리 싸도 기본 7불은 지불해야 하는 미국 내 다른 외식 업체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다. 싸다고 해서 샌드위치의 품질이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6인치짜리는 3.75-4.75불, 12인치짜리는 5-8불이면 살 수 있는데, 6인치짜리를 먹으면 2-3시간쯤 후에 배가 고파지지만, 그냥저냥 버틸만 하다.
보내온 쿠폰은 6인치짜리 샌드위치 하나와 음료수 하나를 사면 6인치 샌드위치를 공짜로 주는 딜이다. 5월 말일까지 마감이라 아내랑 엄청 신나게 가서 먹었다. 7불정도에 둘이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이게 딱히 좋은 딜이 아니었던거다. 음료수야 뭐 우리는 굳이 안먹어도 상관 없는거고, 그냥 12인치 하나 사서 둘이 반 갈라먹으면 쿠폰 없이도 7불이면 된다. 물론 쿠폰을 쓰면 둘이 각자 좋아하는 맛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메리트는 아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내가 아까 제외한 가능성, 사실은 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참일 수도 있겠다는 거다. 일상의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기회비용을 고려한 최적화를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
암튼 내일은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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