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lden Times

스윕당한 김에 써보는 야구 이야기.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오늘자 승률은 0.46이 채 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야구 결과를 확인하면 50% 이상의 확률로 져 있다는 얘긴데, 어째서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하게는 왜 이따위 팀을 응원하고 있는가. 


미시에서 얘기하는 합리성(rationality)은 소비자가 구매행위를 할 때, 본인이 선택 가능한 모든 대안들 중 가장 큰 효용(utility)를 주는 것을 택한는 가정이다. 이에 따라 내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승률이 절반도 되지 않는 팀이지만, 그래도 그 팀을 응원하는 게 나에게 가장 큰 효용을 가져다 준다.


"사실은 내가 합리적이지 않다" 는 가능성을 제하면, 이 것 밖에 남지 않는다. 

그나마 이 팀을 응원하는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일단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살펴보자.


1. 약 46%의 확률로 이겼을 때의 만족감과 54%의 확률로 졌을 때의 빡침을 가지고 기대효용을 계산하면 그래도 양수가 나온다. 


$$ E(U) = p(win) * U(win) + [1 - p(win)] * U(lose) $$ 

위의 식에서 \(p(win) = 0.46\)이고 \(p(lose) = 1 - p(win) = 0.53\)이다. \(U(win)\)은 이겼을 떄의 만족감이니까 양수일거고, \(U(lose)\)는 졌을때의 빡침이니까 음수일텐데, 다음과 같은 식만 만족시키면 내 기대효용, \(E(U)\)는 양수가 된다

$$ U(win) > -\dfrac{0.54}{0.46} ~U(lose) = -1.17~ U(lose) $$ 

즉, 이겼을 떄 기쁜 게 졌을 때 빡친 것 보다 절대값으로 1.17배 이상 더 크면, 0.46이라는 승률에도 나는 매일 평균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가설이 그럴듯 한 이유는, 팀이 이겼을 때와 졌을 떄의 내 행동 양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이긴 날은 아침을 먹으며 티비로 경기 하이라이트를 감상하여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피스에 도착하면 일단 "XXX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류의 기사를 보면서 한껏 고양감에 휩싸인다. 반면 지는 날은 경기 하이라이트 및 온갖 야구 관련 기사/글을 죄다 패스하며 최대한 야구를 내 일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위의 식에서 \( U(lose) \)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야구는 원래 감정이다.


사실 이 부분이 좀 재밌는 지점인데, 여러가지 선호와 관련된 것들 중 정치나 종교같이 야구도 이성보다는 감정의 영역인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누군가가 빨간색을 싫어한다고 해서 딱히 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진 않지만, 정치/종교/야구 이 쪽으로 오면 일단 논리가 작동하기에 앞서 마음이 먼저 어지러워진다. 도대체 왜일까?

솔직히 정치나 종교도 왜 그렇게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 둘 다 내 삶 자체를 규정하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서일 수도 있고, 워낙에 열성적 지지와 안티들이 격렬하게 싸우는 분야라서 그럴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콕 찝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야구는 더 생뚱맞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5년 전 13연패를 했을 땐 밥도 먹기 싫었던 걸까. 왜 그 팀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는 걸까. 

대부분의 스포츠팀은 특정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으며, 그 팀을 응원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일체감/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하나의 설명이 될 순 있겠으나, 내가 응원하는 팀은 내가 살아본 적 없는 곳을 연고지로 삼고 있다. 야구를 한두해 못한 것도 아니고 한두해의 예외를 제하면 15년정도 꾸준히 못하고 있다. 

논리적으론 설명이 안된다. 





Subway에서 샌드위치 쿠폰을 보내왔다. Subway는 4-6불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아무리 싸도 기본 7불은 지불해야 하는 미국 내 다른 외식 업체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다. 싸다고 해서 샌드위치의 품질이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6인치짜리는 3.75-4.75불, 12인치짜리는 5-8불이면 살 수 있는데, 6인치짜리를 먹으면 2-3시간쯤 후에 배가 고파지지만, 그냥저냥 버틸만 하다. 

보내온 쿠폰은 6인치짜리 샌드위치 하나와 음료수 하나를 사면 6인치 샌드위치를 공짜로 주는 딜이다. 5월 말일까지 마감이라 아내랑 엄청 신나게 가서 먹었다. 7불정도에 둘이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이게 딱히 좋은 딜이 아니었던거다. 음료수야 뭐 우리는 굳이 안먹어도 상관 없는거고, 그냥 12인치 하나 사서 둘이 반 갈라먹으면 쿠폰 없이도 7불이면 된다. 물론 쿠폰을 쓰면 둘이 각자 좋아하는 맛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메리트는 아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내가 아까 제외한 가능성, 사실은 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참일 수도 있겠다는 거다. 일상의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기회비용을 고려한 최적화를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 

 

암튼 내일은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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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brownbag에서 작년 가을학기부터 C와 같이 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깜짝 상식: Brownbag이란?


원래 brown bag은 말 그대로 갈색 봉투인데, 미국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 등을 사면 보통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준다 (그 왜 우리가 머릿속으로 파리지앵이 아침에 자전거 앞 바구니에 바게트빵을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싣고 파리를 달리는 걸 상상했을 때의 딱 그런 봉투). Brownbag 세미나는 간단한 음식을 사서 brown bag에 담아와갖고 모여앉아 각자 먹으면서 발표하는 형태의 연구 세미나.  우리 과에서는 매주 박사과정생 1--2명이 돌아가면서 자기 연구 주제를 발표한다. 내가 1년차 때에는 이걸 낮 12시에 해서 Brownbag의 정신에 부합했는데, 이번 학기엔 오후 3:30에 하는 바람에 뭘 실제로 먹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실제로 활용될 때에는 원래의 취지/어원과는 무관하게 뭘 먹든 말든 그냥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발표하는 세미나를 brownbag이라고 하는 듯. 참고로 지난 학기에 내가 가서 발표한 옆 학교도 Brownbag을 아침 10시에 한다. 


나랑 C가 하는 일은 학과의 메인 연구 주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메인이 되는 분야라고 하면 미시계량을 이용한 전력, 재래/비재래 에너지 자원 생산/시장, 광물 시장 분석등인데, 우리는 좀 노동경제학, 환경경제학 및 사회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학과에서 하는 것과 다르다는 건 뭐다? 처음 시작했을 때 나도 익숙하지 않은 주제였다. 이쪽 분야에서 자주 이용되는 용어나 개념 등이 눈에 익기까지 반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 하는 내용이 reduced-form 보다는 structural로 푸는 게 더 적절한 것이라 모델이 무지하게 복잡하다. 즉, 발표에서 이쪽에 낯선 청중들에게 설명해야 할 게 굉장히 많다. C는 발표를 40분 정도 잡고 하라고 했는데, 동시에 청중들이 이 내용들 잘 모르니까 hedonic이나 sorting 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은 설명을 해 줘야 한단다. 그 두 가지는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암튼간에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땐 정말 막막하고 관련 논문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했는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아주아주 조금씩이나마 더 이해를 해 나가다 보니 재미가 많이 붙었다. 새로운 내용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지만, C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참 많다. C는 무지하게 깐깐한데, 연구 외적인 부분에 대해는 터치를 하지 않고 연구와 관련된 분야에만 깐깐하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게 괴롭지 않다. 미팅을 하면서 내가 내 딴에는 괜찮은 아이디어랍시고 들고가는 것들을 C는 정말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과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를 따져본다. 그러다보니 나도 뭔가 큰 생각 없이 대충 이럴 것 같다 수준에서 내뱉지 않고, 더 꼼꼼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지금 선행연구를 replicate하고 있는 단계인데, 선행연구와 다른 결과를 얻고 있다. 왜그런가 생각해보니 자료의 한계로 인해 housing prices 변수를 선행연구와 다른 걸 쓰는 것 때문인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를 하면, 구체적으로 그런 변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추정치를 bias할지를 논의하고 싶어한다.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건데, 그간 내가 그런식으로 훈련을 받지 않았던 터라 처음엔 참 당황스럽고 어버버 하고 그랬다. 

동일선상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C는 내가 예전에 설명한 equilibrium model vs. econometrics 에서 전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후자인 계량에 대해서도 꽤 좋은 직관과 접근방식을 갖고 있다. 이번 논문에선 두 방법론을 다 쓰는데, 이 경험을 토대로 내 역량이 한 단계정도는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이번이 네 번째 brownbag 세미나 발표였는데, 처음엔 M이랑 한 ethanol 페이퍼였고 두번째와 세번째엔 내 qual II 페이퍼로 발표했다. 첫 발표는 M이랑 같이 했다고는 하나, 주로 내가 분석을 돌리고 M은 방향 정도만 설정해주는 것이었으며, 두번째/세번째는 그냥 내 단독저자 논문이었다. 따라서  C랑 엄청 논의하면서 준비한 이번 발표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하겠다. C는 논문 실적이 우리 과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니까 그 사람에게 1년 가까이 지도를 받으면서 준비한 논문인데다가 애초에 연구의 틀을 C가 잡아놓고 나서 내게 RA를 제안한 것이었기 때문에, 연구 세팅의 수준은 앞선 내 연구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나도 그냥 무임승차한건 아니고 그간 진짜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발표자료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이 정도면 최소한 지금까지의 발표들 중엔 제일 수준이 높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발표는 잘 끝났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말하려고 했던 내용을 모두 말했고, 우리가 막혔던 부분에 대해서 청중들로부터 좋은 조언도 많이 받았다. 발표 끝나고 다음날에 만난 애들이 어제 발표가 좋았다고 한다. 이것들.. 지금까진 안그랬잖아.. 이제 6월 학회 전까지 빡세게 해서 잘 발표하고 쭉쭉 진행해 나가면 될 것 같다. 


우리 학과에서 brownbag을 할 수 있는 건, 에너지/환경 분야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학생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교수 1인에 박사과정 학생 10명 이하의 규모였다면 이런 형태의 세미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척 적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이번에 발표한 논문을 진행하면서 다른 교수들에게도 자문을 많이 얻었었지만 우리가 하는 연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성있게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냥 그 때 그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는 교수들을 찾아갔을 뿐이지. 그런데 이번에 발표할 때에는 C외에도 교수 3인이 더 왔고, 박사과정 학생들도 15명정도 참가했다. 그러다보니 각자 자기가 익숙한 분야의 관점으로 우리 논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들을 많이 얘기해주었다. 발표 준비에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지만, 이게 시간낭비로 느껴지기 보단 여러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어 크게 괴롭진 않았다. 


이번 발표를 통해서 배운 건, reduced-form 에서의 identification 을 더 잘 해야겠다는 점이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이나 공학과는 달리 잘 통제된 실험을 통해서 데이터를 얻을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회귀분석을 돌릴 때 다들 목숨을 걸고 내생성이 없는 세팅을 만들어 변수들간의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남들은 보면 처음 보는 모델에서도 내생성이 발생할 여지를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발표 끝나고 M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논문을 많이 읽고 경험을 쌓는 수 밖에 없단다. 엄청 희망적인 조언이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보단 나으니깐. 노력하면 되는구나. 사실 이런 쪽으론 I가 내가 본 사람중 최고인데 요즘 계속 출장중이라 못 물어봤다. 다음에 찾아가서 너의 비밀 레시피를 공유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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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

...이 다 끝났다. 


봄방학은 봄학기의 딱 절반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학기를 돌아보기에 좋은 기회다. 이틀 밖에 안되는 가을방학에 비해서 봄방학은 일주일 정도로 길기 때문에 미국애들은 대부분 고향에 간다. 난 여러가지 일이 겹쳐서 그냥 학교에서 계속 일을 했는데, 학교엔 international들밖에 없었다. 


이번학기는 나의 박사 과정에 있어서 분수령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 수업은 지난학기부터 안듣기 시작했지만, 학위논문 주제 설정을 이번학기 초반에 완료하고 연구를 진행해야 내가 생각하는 스케줄대로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직장을 구할 예정인지라 학위논문, 그 중에서도 job market paper라고 불리는 메인 챕터가 매우 중요하다. 난 같은 과의 다른 박사과정생들에 비해서 연구를 좀 일찍 시작한 편이다. 초반에 펀딩때문에 RA를 절박하게 구하다보니 그렇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jmp 쓰는 것도 시간적으로 남들보다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썼듯 내가 생각한 주제로 지도교수를 설득하는 게 지지부진하여 계속 시간만 지나면서 결국 학기의 절반이 되는 동안 학위논문 관련해서는 별다른 결과물이 없었다. 그래서 매우 우울한 상태로 봄방학을 맞이했다. 방학 동안은 좀 여유를 갖고 이것저것 생각해보면서 지난 세 달동안의 미팅에서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지금까지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던 주제를 마침내 엎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제를 하나 생각해서 오늘 미팅에 들고 갔는데, 두 명의 co-advisor가 모두 그대로 진행하라는 사인을 줬다. 연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100단계로 보면 이제야 겨우 첫번째 단계를 패스한 셈이지만, 이번학기 내내 나를 괴롭히던 것이 해결되어 마음은 좋다. 


E와의 연구는 계속해서 지지부진하다. 1년 이상 전에 끝났어야 할 페이퍼는 아직도 안나오고 있다. 분석 결과는 진작부터 나와있는데, E가 모종의 이유로 연구를 맺지를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하는 애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이 나온다. 특히나 새로 더해지는 내용의 대부분이 내가 해야할 일들이라 나도 몸과 마음이 즐겁지 않다. 지금 내 RA가 E와 10시간, C와 10시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렇게 되면 E와만 20시간 일할 때에 비해 절반 분량의 일을 C, E와 각각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실상 20시간 분량의 일을 둘 모두와 하게 되는 것 같다. 박사 첫해만 하더라도 E의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데, 지금은 내 학위논문 주제와 관련된 C랑만 일을 하는게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 앞일은 정말 모르는 거란 생각이 든다. 


학위논문의 첫번째 챕터는 드디어 원고를 완성해서 봄방학 시작 직전에 M에게 보냈다. 1년가까이 해오던 프로젝트를 드디어 마쳤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기뻤으나, 원고를 읽어본 M이 인트로를 갈아엎을 것을 주문해서 아마 2-3주는 더 걸릴 것 같다 하.....


C랑 하는 일은 조금씩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 전에 얘기한대로 여름에 근처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발표하기로 결정. 올 여름에 독일에서 열리는 다른 학회가 있는데, 이건 등록비 무료에다가 여비까지 학회측에서 지원을 해 준다. 너무 좋은 기회라서 지원을 하려고 했으나 3주정도 남은 데드라인 전에 full paper가 완성되기는 어려워보여서 올해는 아무래도 힘들지 싶다. 무척 아쉽구나.


느리지만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이번학기의 남은 절반 동안에는 jmp 데이터 및 초벌 분석 돌리고, E랑 계속 일 하고, 첫번째 챕터 마무리 짓고, C랑 하는 일 진행 및 발표 두어번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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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 된다고 신난다고 글 쓴게 엊그제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또 막혀있다.

12월 초부터 지금까지 근 3개월간 주제 잡는것에 매달려 있는데, 구체화되기는 커녕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게 무산될 위기다. 3달을 매달려 있었다곤 하지만, 그간 뭔가 엄청 진행된 건 없다. 돌이켜 보면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내가 하겠다고 덤빈 게 인구 이동쪽인데, 이게 그 동안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부분이다. 누군가 논문을 쓸 때 중요한 건 그 주제에 대한 통사적인 이해를 갖는거라고 했다. 예를 들어 헤도닉으로 논문을 쓴다고 하면 Rosen이나 Roback의 논문부터 시작해서 관련 개념이 어떻게 정의 및 확장되어왔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거다. 수업이라는 것이 박사 중-고년차로 갈 수록 오히려 무언가를 배우기에 비효율적인 수단이 되곤 한다. 그 때 쯤 되면 이미 굉장히 좁은 영역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텐데 수업은 태생적으로 관련 분야의 일반적인 내용들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구 이동을 알고 싶다고 노동경제학을 듣는다면, 한 학기 약 16주 동안 인구 이동을 커버하는 건 끽해야 2-3주 수준일거다. 물론 안들어봐서 잘은 모른다. 마찬가지로 헤도닉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고 환경경제학을 들어도 헤도닉 자체는 2-3주나 하려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스스로 논문을 찾아서 읽는 건데, 이게 현실적으로 잘 안된다. 우선 처음 어떤 분야를 시작하면 읽어야 할 논문의 수가 산더미인데 내가 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일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일단 돈 받는 일은 제대로 해 줘야 하니까 내 논문이 우선순위에서 언제나 밀려버리는데, 통사적 이해를 위해서는 매우 규칙적으로 긴 기간 동안 꾸준히 논문을 읽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혼자서 읽는 것의 다른 문제는 논문을 읽다가 막혔을 때 물어볼 곳이 마땅치가 않다. 교수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보긴 하는데 그 것도 한두번이지 끊임없이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일단 넘어가는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해당 분야의 큰 흐름에서 내가 읽고 있는 논문이 갖는 위치나 의의를 파악하는 게 공부하는 단계에선 쉽지가 않다. 이런건 정말 수업이 최고지. 

그제 C랑 미팅하면서 결국 내가 하려는 것의 정책적 함의가 뭐냐는 질문을 또다시 받았는데, 내가 준비한 대답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실 저 질문을 이번에 서너번째 듣는거긴 한데, 그 때마다 내가 계속 조금씩 뭔가 살을 붙여오긴 했지만 충분치 않은 눈치다. C가 이젠 기다리다 지쳤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내 아이디어의 정책적 함의를 얘기해줬다. 말이 짱 됐다. C말로는 자기가 말한 게 노동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인구 이동을 얘기할 때 중요하게 생각되는 거란다. 즉, 전공자가 보기엔 너무 뻔한 답이 있었던 거다. 결국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간다. 저런 걸 알아차리는 감, 혹은 저런 걸 설득력있게 포장하는 능력은 결국 해당 분야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건 또 많이 읽어야 하고, 근데 지금 당장 꾸준히 읽을 여유가 없고. 그럼 진행이 안 되고. 쓰다보니 진짜 답이 없다. 결국 다른 일을 할 때 더 효율적으로 하고 강제적으로 논문 읽는 시간을 할당해서 해당 시간엔 아무리 급한 다른 일이 있어도 무시하고 읽는 수 밖에 없겠다.  


둘째 문제는 지난 3개월간 뭔가 명확한 단기적인 목표가 없었다. C는 계속 정책적 함의를 물어보는데, 내가 뭘 더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내 생각엔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시간이 계속 가고 있고 나는 점점 더 마음이 쫓기게 되어 뭔가 진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데이터도 모아보고 식도 세워보고 했다. 근데 C는 일단 정책 함의가 설득력있게 나오지 않으면 주제 자체를 갈아 엎자는 쪽이기 때문에 내가 진행한 모든 것들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간다. 이 과정을 3달간 계속 반복하면 오늘에 이른다.


세번째 문제는 그래서 C와의 의사소통 문제다. 솔직히 나 스스로 정책 함의를 떠오를 때 까지 기다려주는 의도 자체는 매우 감사하다. 내가 독립된 연구자로서 활동하려면 그 능력이 필수니깐. 하지만 내가 일정 기간 이상 헤매고 있었으면 관련된 논문을 던져주는 형식으로 힌트를 줬더라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그건 철저히 내 입장에서 바라본 경우이고, 현실에서 그런 걸 지도교수에게 바라는 건 사실 좀 너무 이상적인 감이 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며 얻은 결론을 나중에 잘 살리기만 하면야 지난 시간이 꼭 낭비라고만 할 수는 없다.


여튼 이래서 요샌 또 내가 과연 학위를 무사히 받고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을 지 회의감에 젖은 상태다. 

그런데 박사과정이 항상 그래왔듯,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으면 또 뭔가 되살아날 계기가 생긴다. 올 여름에 우리 지역에서 우리 분야에 꽤 큰 학회가 열리는데, C랑 일하는 논문을 투고했던 게 수락됐다고 연락이 왔다. 해당 학회에 일반 세션과 sponsored 세션 두 개가 있는데, 뒤에건 특정 주제에 대한 논문을 대상으로 해서 뽑힌 사람들에겐 등록비 및 여행경비를 지원해준다. 약 10%가 뽑혔으니까 꽤 경쟁이 있었던건데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논문이란다. 사실 저 논문의 주제 선정 및 분석 틀 잡기를 C가 마친 다음에 내가 RA로 들어간데다가 우리가 투고한 건 계획을 설명하는 수준의 초록이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우리 논문이 뽑힌 데에 내 기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뭐 내가 발표자고, 가서 발표를 할 땐 분석 결과가 있어야 하니까 그 때 가면 내 기여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어이없지만 마지막으로 딴 얘기를 해보자면, 통사적 얘기하면서 떠오른 건데 통사적인 이해를 하는 데에는 강의계획서를 써 보는게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언제나 저런 쓸데없는 일이 가장 나의 의욕을 불타게 하므로 나는 당장에 \(\LaTeX\)으로 강의계획서 서식을 만들어봤다. 물론 내용은 못채웠다. 하나도. 그래도 재밌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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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0) 2015.11.25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을 하나 봤는데, 국내 박사를 더욱 대우함으로써 국내 학문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해결방식에서 내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전반적인 문제의식에 적극 공감한다. 나 역시 우리나라 젊은 학자들이 굳이 유학을 나오지 않아도 최신의 연구동향을 충분히 접할 수 있고, 충분한 지도를 받아 그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강하게 희망한다.


그간 몇 차례 얘기 했지만, 미국의 연구 문화/환경을 접하고 가장 처음 놀랐던 것들은 데이터의 가용성, 관련 연구 분야의 규모 (연구자 수, 연구 주제의 포괄성 등), 그리고 취직 기회의 다양성 등이었다. 한국에서 석사 학위기간 포함 5년 가량 연구 관련 직종에 있다가 나왔는데, 그간 내가 배우지 못했던 것들이 신세계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놀란 것은, 생각해보면 내가 석사한 곳에서 박사를 했던 선배들은 내가 신세계라고 느꼈던 것들을 한국에서 박사를 하면서도 이미 알아서 깨우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석박사 기간 동안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문제는 그 여러가지 요인들이 대부분 외부 요인들이라는 거다. 즉,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가장 기본이고,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지도교수의 역량, 연구 환경, 인프라 등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다른 것들은 말을 꺼내기조차 너무 조심스럽고, 연구의 인프라,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 보고 싶다.


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적어도 내가 하는 분야는 미국이 최첨단 연구를 이끌고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유명한 논문들은 영어로 되어 있고, 논문 뿐 아니라 교과서/강의노트 등의 교육자료, 데이터도 영어다. 요즘 10대/20대들은 우리때 보다 영어 수준이 훨씬 뛰어나다고 들었지만, 첫째로 애초에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쓰는 것은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읽는 건 사전찾아가며 하면 되지만, 효율에서 한글로 된 문서를 읽는 것과 비교가 안 된다. 말하기나 쓰기로 가면 아예 다른 차원이다. 

미국이 학문을 선도하는 것의 다른 문제점은, 최신 연구 동향이 한국까지 흘러들어가는 데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실 요즘은 연구자들이 자기 홈페이지에 자신의 최신 논문을 자기 홍보겸 해서 많이들 올려두는 추세고, NBER working paper 같은 것도 시스템이 잘 구축된 데다가 대부분의 대학에서 구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최신 연구를 접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working paper만 해도 처음 연구에 들어간 시점부터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올라오기까지 작게는 몇 개월부터 크게는 몇 년까지의 시차가 존재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최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인적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것 같다. 교수들이 개인적 친분이 있는 다른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얻는 정보. 최신 연구를 수행하는 교수들이 내가 있는 곳에 방문하여 자기 연구를 발표하며 말해주는 것을 통해 얻는 정보. 


이런 점에서 미국으로 박사를 하러 오는 것은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금전적인 비용은 대부분의 박사과정이 학비 및 생활비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박사를 하는 것과 비교해 의외로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유학에는 다른 여러가지 일반적으로 잘 조명되지 않는 난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외로움.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된다. 특히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시골에 있는 한인들 적은 곳으로 나올 경우, 본인이 굉장히 외향적이고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많이 힘들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예로는 기득권의 측면이다. 한국에서 학석박을 모두 할 경우 대부분의 경우 학사-석사-박사로 가면서 소위 말하는 학벌이 높아진다. 그러다 미국에 나오게 되면 극소수의 인재들을 제외하면 20위권 학교를 간다는 게 한국에서 서울대 가기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쉽게 말하면 학벌이 낮아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난 개인적으로 그런거 전혀 신경 안쓰지만 사람에 따라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영어도 위에서 쓴 내용 말고도 정말 여러가지 면에서 괴롭힌다. 어느 정도 지나면 생활영어나 학술영어는 그래도 크게 사고는 안 칠만큼 늘지만 평소 쓰지 않는 분야의 말은 여전히 알기 어렵다. 관공서에 가서 일을 볼 때라든지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내 사정을 설명하는게 보통 고역이 아니다. 친구들과 바에 가서 얘기를 할 때에도 나 빼고 모두 미국인인데, 자기들 학창시절 얘기를 꺼내면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이외에도 유학을 나온다고 딱히 해외취업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혹여 퀄에 떨어지거나 장학금이 끊겨서 한국에 돌아가게 되는 경우의 매몰비용 문제. 한인마트가 없는 지역일 경우 음식 문제, 미국도 연구 환경이 사실 평균적으론 좋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천차만별인데 이게 직접 나오기 전까진 일정부분 복불복이며 나와서 문제가 터지면 한국에서 문제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큰 사건이라는 점 등등 여러가지 사항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쉽사리 유학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한국에 학문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설령 유학의 비용이 편익보다 현저히 낮다 하더라도 국내 연구 환경을 제대로 정비하는 것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어보인다. 


내가 어줍잖은 지식으로 계량이나 equilibrium model 등의 방법론을 포스팅한 것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하는 글을 올리려는 것도 이런 것들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의 발로다. 아직 내 수준에서 쓸 수 있는 글이 고급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내 글의 틀린 점들을 지적해주시길 기대하고 있다. 다만, 내가 석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랬듯이, 이제 갓 학문의 길에 들어선 분들에겐 한글로 쓰여진 글을 통해 내가 배운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공부라는 게 지금 익힌 걸 몇 달 뒤에만 봐도 너무 새롭기 때문에, 지금 이해한 걸 적어두는 게 나 스스로를 위한 면도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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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 내로 티스토리로 옮길 계획인데, 그럼 여기를 알고 있는 약 4인에게 다시 주소를 알려줘야 되겠지.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긴 하는데, 이글루스 뭔가 맘에 안들어서 옮기고 싶다.


어제 C&M과의 미팅에서 또다시 계획이 바뀌었다. JMP 주제를 교수들이 어느 정도는 던져 줄 것으로 생각하고 약간 안이하게 있었는데 아카데이마에 남을거면, 특히나 우리학교 같이 남들이 잘 모르고 지금까지 아카데미아에 졸업생들 보낸 기록 없는 학교에서는 나의 연구 역량에 대해 potential employer들이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 쉬우므로, 연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단다. 그거야 알고 있었지. 근데 그러고 나서 다음 주 까지 JMP 주제, 방법론, 그게 왜 중요한지 등을 준비해 오라신다. 한 주만 더 달라고 해서 결국 2주 후로 미루긴 했는데, 엄청 막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압박이 들어오니 일이 진행이 더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껏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 알게 되어 다행이기도 하다. JMP 주제는 뭔가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하니까, 내가 뛰어드려는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한 다음에, 그 분야에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게 뭔지 파악할 능력이 될 떄 즈음에야 주제를 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진 논문만 읽어왔다. 근데 읽는 게 중요하긴 한데, 거기에만 매몰되지 말란다. 계속 읽기만 하면 중요한 건 남들이 다 해놨다는 결론밖에 안나오니까, 일단 뭐라도 정하고 뛰어들란다. 근데 그렇게 중요한 주제를 2주 만에 정하는게 가능한지 아직도 마음 속 한 켠에 회의가 있긴 하다. 

JMP 뿐만 아니라, 2번째 챕터도 C랑 같이 일 하는걸로 하지 말고, 거기서 개발한 다른 주제로 혼자 진행하는게 낫다고 한다. 애초에 거기서 개발한 걸 JMP로 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주제 2개를 새로 파야되는 셈이다. 이젠 진짜 정신 제대로 안 차리면 얼마 전 졸업 1년 밀린 걸로 안끝날 분위기다. 


여기 날씨/기후는 완벽하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겨울엔 눈도 많이 온다. 대신 여름에 건조해서 에어컨 없이 세 번의 여름을 나는 데 무리가 없었다. 물론 낮시간 동안 학교에 거의 있었어서 그런 것도 클 거다. 그래도 건조한 덕에 한낮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밤에 열대야 이런건 1년에 많아야 2-3일이다. 겨울에 춥지만, 일별/주별 온도차가 커서 오늘 영하 20도라도 2-3일 뒤면 영하 10도로 올라가고, 그 다음주엔 또 영상 10도까지 올라간다. 눈이 많이 오지만 눈을 치우는 분들이 거의 장인 수준으로 잘 치우고, 1년에 300일 이상이 맑기 떄문에 전 날 눈이 20센치가 왔어도 다음 날 낮에 해가 3-4시간만 나면 도로는 물기도 없이 마른다. 공기 깨끗하고, 물도 맑아서 엄청 큰 맥주 공장도 있다. 어릴 때 부터 엄청나게 날 괴롭히던 비염도 여기 와서 완치되었다. 1년에 200일 이상 콧물 흘리던 괴로운 날들이 언제였냐는 듯, 여기 와서 지낸 2년 반 동안 호흡기/기관지 쪽이 아팠던 건 다 해봐야 닷새도 안되는 것 같다. 

언젠간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곳의 climate amenity가 나에게 준 효용을 임금만으로 보상하려면 한국에서의 연봉이 여기보다 최소한 1억은 더 높아야 할 것 같다. 내 효용함수의 argument가 기후와 임금만 있는 건 아니니까, 실제론 더 적게 줘도 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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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두 번째 학부 강의를 했다. 내가 분명히 지난달에 처음 수업하고 나서 느낀 절망감과 상실감을 어딘가에 써놨는데, 싸이에도 없고 이글루스에도 없네 어디간거지... 


첫 수업은 M이 부탁해서 간 3학년 수업이었는데, 50평 이상의 광활한 강의실에 학생이 6명 있었다. 내가 여기 와서 쓴 첫 논문 주제에 대해서 애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는 거였는데, 놀랍게도 6명 중 2명은 내내 휴대폰을 만졌고, 2명은 나를 가끔 쳐다보며 서로 속닥였으며, 나머지 2명만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차라리 내 논문을 발표하라면 1시간정도는 떠들 수 있는데, 이건 학부생 레벨에 맞추어 설명을 하느라 이런 저런 모델 다 떼고 관련 산업 얘기를 하려니 말 할 거리도 부족하고, 게다가 영어로 해야되고, 애들은 중간에 나가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왜 교수들이 학부 수업 강의를 피하려고 하는 지 이해가 됐다. 

아 물론 전적으로 애들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학부 수업에 가서 대학원 레벨의 발표를 했으니, 미리 애들의 눈높이를 파악하지 못한 내 잘못이 못해도 절반은 될거다. 이 경험으로 배운 건 학부수업을 할 땐 예를 들어 미시를 가르치더라도 대학원 미시처럼 수식과 논리로 커버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애들이 관심을 가질만 한 사례나 내용으로 최대한 흥미를 유도해야 되는구나 하는거다. 애들은 수업이 듣고 싶어 미치겠어서 강의실에 오는 게 아니다. 

끝나고 나서 M이랑 얘기했는데, M이 말하길 걔들은 그나마 괜찮은 학교의 3학년들인데도 그러니, 하위 티어 학교의 1-2학년들이 수업시간에 어떨지 상상을 해 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강의자가 미리 잘 준비를 해야 된다고, 담엔 더 잘하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E의 수업이었는데, 지난 주 목요일에 시험감독을 들어갔고, 오늘은 시험지 나눠준 뒤에 미시쪽 내용을 강의하는 계획이었다. 근데 이번 주가 Thanksgiving이라서, 게다가 교수도 아니고 대학원생이 대체강의를 한다니 더 그랬겠지만, 시험은 39명 봤는데 오늘 수업엔 14명이 왔다. 지난 트라우마를 애써 잊으려 노력하며 꿋꿋이 진행을 했는데, 하다보니 14명 중 하나가 첫번째 수업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2명 중 하나더라. 내가 준비한 내용 마치고 E가 제안한대로 애들에게 연습문제 그룹으로 풀게 시키고 답을 발표하라고 했는데, 전반적으로 별 무리 없이 끝난 것 같다. 




11월 초부터 좀 슬렁슬렁 했더니만 드디어 여러가지 신호들이 나에게 농떙이는 이제 그만이라고 경고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계속 이래도 되는 거냐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교수들이 슬슬 이제 한 번 봐야되지 않겠냐고 연락이 오고 있다. 사실 11월의 느슨함은 내 스스로 좀 놔버린 탓도 있지만, 절묘하게 나랑 일하는 교수들도 한 달 내내 뭔가 일을 진행을 못시켰다. E는 절반정도 출장중이었고, C는 11월 초에 내게 모델 보낼테니 검토하라고 했지만 아직도 보내주지 않은데다가 중간에 내가 보낸 경과 보고 메일에 답도 안했으며, M은 뒤늦게 알고 보니 11월의 대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보냈단다. 뭔가 우주의 기운이 모여서 2년 넘게 달렸으니 좀 쉬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제 슬슬 그만해야겠다. 오늘 강의 가는 도중에 C를 만났는데, 뭔가 나라잃은 표정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엄청 오래 까먹고 있던 뭔가가 기억나서 안타깝다는 느낌으로 we should meet 이라고, 담주에 보자고 하고, M 연구실 가서 얘기를 좀 했는데, 담주에 C 만나서 회의 할 때 자기도 불러달란다. 내 3번째 챕터 주제 잡는거 C랑 자기가 지난 주에 얘기해 봤는데, 뭔가 드라이브를 이젠 걸어야 될 것 같다고. 


그러고 보면, 여기 교수들은 엄청 자기들끼리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뭘 하는지, 내 논문의 진행상황이 어떤지를 한 교수에게만 말하면 1주일 내로 학과 내 모든 교수들이 알고 있다. 교수들이 내 얘기 혹은 학생들 얘기만 하진 않을거고, 그만큼 자기들 연구 얘기도 엄청 하겠지. 이걸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나도 내 사무실에만 앉아있지 말고, 최소한 2주에 한 번 씩은 나한테 돈 주는 교수들 이외에 다른 교수들에게 찾아가서 가볍게라도 내가 뭘 하는지 알려야 한다는 점이지 않을까. 보통 다들 그러면서 논문 진행 아이디어를 얻는 모양이니까, 나도 나중에 직장 잡아서 살아남으려면 미리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간에, 다음 주 언젠가 있을 C 및 M과의 미팅을 위해 향후 1주일간은 다른 거 다 제쳐두고 그 쪽 논문만 줄창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예전처럼 다시 달리기 위한 워밍업은 충분히 되어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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